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로오카 타츠로 (문단 편집) == [[히로시마 도요 카프]] 코치 시절 == [[파일:external/www.sanspo.com/npb14072210570001-p1.jpg]] 1970년 [[네모토 리쿠오]] 감독의 요청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내야 수비 코치로 취임하면서 [[타격]] 코치인 [[세키네 준조]]와 함께 [[야마모토 코지]], [[기누가사 사치오]], [[미무라 토시유키]], [[미즈타니 지쓰오]] 등을 길러 후의 70년대 후반~90년대 중반 히로시마의 황금 시대의 초석을 닦았다. 또, 네모토로부터 [[외야수]]였던 [[소노다 도시히코]]를 내야수에 변환하도록 명령을 받았으나 소노다는 능숙함을 전혀 보이지 않았고 엄격한 지도로 인해 스트레스와 원형 탈모증에 걸리는 등으로 인해 히로오카도 한 번은 전향을 체념하기 시작했으나 끈기있는 지도를 계속한 결과 [[내야수]]로서 잘 활약할 수 있게 되어 그 이후 소노다는 히로시마의 내야 수비 요원으로서 활약했다. 이 소노다의 내야수 변환은 히로오카에게 있어서 지도자로서의 명활약을 펼치는 큰 재산이 되었고, 이것에 대해 히로오카는 '''“프로에 들어오는 선수는 누구나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 대답을 흙투성이가 되어서 선수와 함께 찾는 것이 지도자로서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선수와 지도자에게 의지만 있으면 선수는 반드시 대답을 찾아내 능숙해진다. 지도자로서의 자신이 있는 것은 소노다의 덕분”''' 이라고 말했다. 정작 소노다는 백업으로 선수생활을 마쳤지만 명스카우터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현재는 친정팀 스카우트 총괄이사이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스타선수를 발굴하는 명스카우터를 키운 셈이다. 1971년을 끝으로 히로오카는 코치직에서 물러났고, 그 후 야구 해설가와 프로 [[골프]] 코치로 활동했다. 카와카미와도 갈등이 풀리면서 카와카미를 직접 찾아가 히로시마에서의 코치 활동 경험을 말하는 등 요미우리의 2군을 지원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